다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회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이 아주 많습니다.”🐾
1,500종의 동물을 그려온 발달장애 예술가, 신수성 작가🎨

1,500종의 동물 그림을 그린 신수성 작가
지난 12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바로 신수성 작가의 개인전 “수풀 아래에 서서”이다. 수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작가의 그림을 보고, 그의 그림 속 동물들과 눈을 맞추었다. 이번 전시는 신수성 작가의 친동생인 신리사 씨가 전시 기획을 담당하여 의미가 더욱 컸다. 신수성 작가와 어머니인 이정례 씨, 그리고 동생 신리사 씨를 만나 그림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1,500종의 동물을 기록한 동물 그림 작가
지난해 말 전시회를 마친 신수성 작가는 요즘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전과 똑같이 동물원에 자주 가고 늘 그렇듯이 그림을 그린다. 신수성 작가는 동물 그림을 주로 그리는 ‘동물 그림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낸 동물은 무려 1,500종이 넘을 정도다. 보통 사람이 아는 동물종의 수는 수십에서 수백 종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화폭에 담아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신수성 작가)
“동물원에서 본 동물들을 집에서도 보고 싶어서 그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가고,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습니다. 집에 오면 관찰한 동물에 대해서 자료 조사를 하고 그림으로 기록합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동물에 관한 자료 조사를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작가가 지켜온 일종의 루틴이다. 어머니 이정례 씨는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규칙을 만들어 동물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전시회를 보러 가더라도 동물 이미지가 있으면 사진으로 찍도록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매개로 세상을 만나고 배우도록 이끌었다.

(어머니 이정례 씨)
“동물에 관한 공부가 없었다면 1,500종까지는 그리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동물인지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그 동물이 어디에 사는지, 속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 뒤에 그림을 그렸기에 1,500개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깨우친 단어 ‘코끼리’
어린 시절 신수성 작가가 가장 먼저 깨우친 단어는 ‘코끼리’였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글자 배우기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걱정했지만, 이내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찾았다. 바로 아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활용하여 학습하는 것이었다. 동물 이름을 눈길 닿는 곳곳에 붙이자, 자음과 모음을 구별하며 한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물의 이름을 익히고 동물을 그려 나가면서 신수성 작가는 세상과 소통했다.
(어머니 이정례 씨)
“아이를 키우면서 아동 발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친근감 있는 것부터 가르쳐 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성이가 좋아하는 동물 이름을 알려주니 글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성이에게 제일 친근하고 중요한 단어는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코끼리나 기린이었던 거예요.”
타인에게 유대감을 갖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때론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분명 또래들과의 상호작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타인에게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아들이 동물원에서는 “왜 그 동물이 오늘 안 보여요?”와 같이 관심을 비췄다. 또한 집에서 혼자 동물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는 듯이 보였다.

(어머니 이정례 씨)
“수성이가 5살, 6살 때부터 토끼 비슷한 것을 그리더군요. 또래 아이들의 그림에 비하면 굉장히 단순했기 때문에 발달이 조금 늦는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아이가 유일하게 그리는 게 동물이었고 동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해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외국으로 출장을 갈 때면 낯선 나라의 동물도감 책을 구해서 가져왔다. 동물도감의 종이가 해어질 때까지 신수성 작가는 책을 보고 또 봤다. 가족 여행을 갈 때면 여행지 근처의 동물원에 방문하여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이 당연한 일정이 되었다. 온 가족이 신수성 작가의 ‘동물 사랑’을 든든하게 지지했다. 그렇게 가족의 응원 속에서 동물 그림 작가로 성장해 나갔다.
동물과 교감의 순간
그는 지난 시간 동안 작가로서 이력을 탄탄히 쌓아왔다. 최근 몇 년만 살펴보더라도 여러 개인전을 열고 단체전에 참가했다. 또한 기업과의 콜라보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동생이자 갤러리의 기획자인 신리사 씨는 신수성 작가 그림의 변화를 옆에서 보며 실감한다고 말한다.
동생 신리사 씨(전시기획자)
(동생 신리사 씨)
“500종을 그렸을 무렵에도 전시를 했어요. 당시 그림은 지금과 비교해 보면 좀 더 소박하고 투박한 느낌이에요. 하지만 1,000종을 그리고, 1,500종을 넘어서면서 기술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보여요. 색 사용도 다채로워지고 털의 질감 등의 텍스처 표현들이 정교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신수성 작가의 특징 중의 하나는 동물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에 동물의 이름을 한국어-일본어-영어 순서로 적는 것이다. 동물의 이름을 기록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우리가 흔하게 아는 동물의 정확한 이름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 새롭다. 예컨대 그저 ‘앵무’라고만 여겼던 동물이 분명하게는 ‘스리랑카사탕앵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동물과 내가 ‘아는 사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신수성 작가)
“앵무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림을 보면서 바로 알 수 있게 씁니다.”
(동생 신리사 씨)
“전시를 보시고 많은 분들이 동물 이름을 적은 글씨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저는 그것이 일종의 선언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빠는 본인이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면서 ‘내가 이 동물과 교감을 했다’, ‘내가 이 동물을 알게 되었다’라는 느낌으로 이름을 적는 것 같아요. 오빠가 그림을 그리며 동물과 교감했듯이, 관람객들은 그림을 통해서 동물과 교감하는 경험을 하는 거죠.”
첫 전시, 그리고 도움을 준 사람들
신수성 작가가 첫 번째로 참여한 전시는 2012년에 열린 “We are animalier”다. 이후 신수성 작가가 전문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이 있다. 계속 그림을 그리도록 권하고 첫 번째 전시를 열게 도움을 준 김지영 교수, KBS 라디오 방송을 같이 진행하며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동물 이야기를 전해준 박병권 소장, 기업과의 콜라보를 추진하여 작품의 외연을 넓혀준 임승호 관장 등이 그들이다. 특히 임승호 관장은 첫 전시부터 시작하여 여러 아트페어와 전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또한 언제나 응원을 보내는 가족들은 신수성 작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신수성 작가)
“엄마는 어릴 때부터 동물원에 많이 데려다주셨고 그림 그리는 것을 응원해 주셨어요. 동생은 옛날부터 내 그림의 따뜻한 느낌이 좋다고 말해주었고, 지난 전시도 멋지게 기획 진행해 줬습니다.”
(어머니 이정례 씨)
“언젠가 아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저의 꿈이었어요. 아들의 그림을 눈여겨본 김지영 교수님이 직접 그림을 들고 다니며 전시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 주셨고, 그렇게 첫 번째 전시회가 열리게 된 거예요.”
하지만 첫 전시의 기쁨도 잠시. 미술 분야에서 전시의 기회를 얻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한국장애인재단의 봄꿈 아티스트였다. 신수성 작가는 2014년 한국장애인재단 봄꿈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현재까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신수성 작가가 프로 작가로 성장한 후에는 재능 기부를 통해 재단과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신수성 작가
(어머니 이정례 씨)
“전시회를 하면 작가의 길이 활짝 열리고 여기저기서 연락도 많이 올 줄 알았어요. 아들은 나이가 점점 많아지는데 계속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미래가 괜찮을까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묵묵히 그림을 그려나가고 동물의 가지 수가 늘어나니까 힘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방송인 안선영 씨가 후원하는 한국장애인재단의 봄꿈 아티스트로 선정된 뒤로 오랜 기간 응원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모든 동물을 똑같은 무게로 존중하다
전시 “수풀 아래에 서서”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동생인 신리사 씨가 기획했기 때문이다. 신리사 씨는 신수성 작가의 그림을 어떻게 선보일지를 두고 고민이 깊었다. 기존의 분류학적인 관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권하며 200여 종의 동물 그림들을 ‘깊은 가족애를 지닌 동물들’ ‘수집가들’ ‘현자들’ 등으로 그룹 지어서 전시했다.
신수성 작가의 그림 속에서는 인기가 많은 동물이든, 알려지지 않는 동물이든 비중이 똑같다. 힘이 센 맹수이든 귀여운 초식동물이든 똑같이 포용한다. 또한 도시화 된 지금, 인간은 동물과 분리가 된 채로 살아가지만 신수성 작가의 그림 속에서는 다시 눈을 마주치고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한 뒤에는 ‘어떤 그림이 좋았는지’ ‘어떤 동물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관람객들 서로가 연결되는 경험 또한 이루어진다.
가끔 작가에게 ‘어떤 동물을 가장 좋아하는지’ 묻곤 하지만, 신수성 작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란 없다. 모든 동물을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만 직접 만날 수 없는 멸종위기 동물을 그릴 때면 마음속에 간절한 바람이 생긴다.

(신수성 작가)
“멸종위기 동물의 경우에는 개체 수가 더이상 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게 됩니다. 그리고 멸종위기 동물 중에서도 제가 아직 모르는 동물이 아주 많아서 놀랍습니다.”
장애인 예술가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신수성 씨는 동물 그림 작가이며, 장애인 예술가이다. 동생 신리사 씨는 신수성 작가를 세상에 소개할 때, 장애인 예술가라는 이름이 앞에 와야 할까를 두고 늘 고민한다.
(동생 신리사 씨)
“장애인 예술가라는 것이 신수성 작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면 안 되겠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더 이해를 하고 마음을 여는 부분도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예술가들을 현대 미술 안에서 한 축으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서 오빠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를 늘 고민합니다.”
신수성 작가는 다소 이해하기 쉬운 그림을 그리지만 이것은 비단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전시,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다. 발달장애는 신수성 작가의 정체성 중 하나일 뿐, 그를 설명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생 신리사 씨)
“장애인 예술가들도 전시를 열고 예술가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의 경우에는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하지요. 그들이 갖고 있는 집중도라든지, 엄청난 몰입은 비장애인이 따라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장애인 예술가를 이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작업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더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이정례 씨)
“한 마디 덧붙인다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나 재주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보통의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능력이 없을 수도 있고, 환경적인 이유로 재능을 미처 발견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이 아주 많습니다
신수성 작가는 세상의 수많은 동물들을 그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색연필로 그려내는 동물 그림은 어느새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면서 영감을 받고 밝은 표정으로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신수성 작가가 만들어낸 놀라운 변화다.

(신수성 작가)
“제 그림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이 아주 많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릴 거니까 지켜봐 주세요.”
지구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물들. 그리고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애정을 담아 그려내는 신수성 작가. 우리가 동물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동물을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 동물이 잘 있는지 안부를 궁금하게 여기게 되듯이, 신수성 작가는 동물과 사람을 연결해 주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생하는 감각을 일깨워준다.
신수성 작가가 기록한 동물들은 이제 우리와 모르는 사이가 아니다. 연결된 관계이고 더 나아가 지구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다.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듯(김춘수의 ‘꽃’ 중 일부)”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더 많은 장애 예술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작품을 알게 될 때, 서로 연결되고 영감을 주고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동물 그림 작가 신수성 씨의 작품을 만나보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취재 : 김주현, 박로사,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