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회
“천천히 가도 괜찮아”💛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을 만나는 세아🐣

밥도 든든히 먹고 좋아하는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긴 날이면 세아(가명, 만 7세)는 인지치료에서도 유난히 에너지가 넘친다. 집에서는 백김치를 먹던 아이가 학교에서 처음 빨간 김치 맛을 본 뒤부터는 빨간 김치만 찾는다. 어머니가 김치볶음을 해주는 날이면 다른 반찬보다 먼저 달라고 할 정도다.
좋아하는 음식도, 싫어하는 것도 분명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어머니와 장난을 치고 싶을 때면 슬쩍 바라보며 웃는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고 친구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면 세아는 학교의 ‘핵인싸’다.
지금은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표현하며 세상과 관계를 넓혀가고 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오랜 기다림과 치료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다른 속도로 시작된 성장
어머니가 처음 세아의 발달이 또래와 조금 다르다고 느낀 것은 생후 6개월 무렵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하나둘 몸을 뒤집고 배밀이를 시작할 때 세아의 움직임은 더뎠다. 이후 네 발로 기거나 스스로 서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가족은 이유를 찾기 위해 여러 대학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이후 세아는 중증의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다. 신체 움직임뿐 아니라 인지와 언어 발달에서도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세아의 신체와 인지 발달 정도를 확인해왔고, 현재도 일부 영역은 두 돌 전후의 발달 수준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제 숫자로 세아의 성장을 판단하지 않는다.
(세아 어머니)
“이제는 개월 수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아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으니까요. 그냥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발달이 느린 만큼 세아에게는 일찍부터 다양한 재활치료가 필요했다. 세 살 무렵부터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치료 일정이 이어졌고,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비롯해 인지치료, 언어치료 등 여러 치료를 받아왔다.
당시 세아는 혼자 걷지 못했고 세 살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아기띠로 안고 병원과 치료센터를 오가야 했다. 아이의 몸은 계속 자랐지만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어머니가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야 했다. 그때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세아 어머니)
“그때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빨리 좋아질 수만 있다면 제가 지치는 건 상관없었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세아가 수많은 치료 일정을 얼마나 힘들게 견뎠을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치료가 아이에게 얼마나 힘들까’보다 ‘하나라도 더 해주면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조금씩 넓어지는 세상
현재 세아는 인지치료와 언어치료 외에도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인지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세아는 의자에 안정적으로 앉아 있는 것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물이나 상황을 사진이나 그림만 보고 이해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
(치료사)
“처음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도 불안했어요.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고, 무엇인가를 쥐거나 잡을 때도 기능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어요.”

세아의 인지치료는 가장 구체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됐다. 예를 들어 ‘주방’이라는 공간을 알려줄 때는 그림 카드부터 보여주는 대신 장난감 냉장고를 사용했다. 냉장고 안에 음료수와 케이크 모형을 넣고 직접 꺼내보면서 ‘냉장고는 먹을 것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개념을 경험하도록 했다. 사진과 그림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실제 사물과 행동을 통해 먼저 경험한 뒤, 점차 그림과 연결해나가는 방식이었다.
약 1년 동안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세아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치료사)
“예전에는 그림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면 지금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림으로도 알아보고 반복해서 수행할 수 있어요. 개념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거죠.”
치료를 통해 세아가 할 수 있는 것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익숙한 사물을 그림으로 알아보고, 치료사의 안내에 따라 과제를 반복해서 수행하는 힘도 생겼다. 자신의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모습도 이전보다 분명해졌다. 현재 함께 받고 있는 언어치료 역시 세아가 자신의 의사를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넓혀가기 위한 과정이다.
어머니가 앞으로 세아에게 미술치료와 음악치료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인가를 더 잘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 세아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넓혀주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 내디딘 한 걸음
긴 치료의 시간 속에서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도 찾아왔다. 3년 전 7월 1일, 만 4살이 된 세아가 처음으로 혼자 걸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성장의 한 장면일 수 있지만 세아와 가족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그날의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세아가 자신의 두 발로 몸을 지탱하고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어머니에게는 ‘벅차다’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그저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기쁨은 가족만의 것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세아의 치료와 성장을 지켜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뻐했다. 많은 사람의 눈앞에서 천천히 자라온 아이였기 때문이다.

세아가 스스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가족들은 오랫동안 수중치료도 이어왔다. 가까운 곳에서 받을 수 없어 매주 토요일이면 한 시간가량 이동했고, 그렇게 약 6년 동안 치료를 이어왔다. 땅 위에서는 몸의 중심을 잡고 서거나 움직이는 일이 쉽지 않은 세아에게 물속은 조금 다른 공간이었다. 물의 도움을 받으면 팔과 다리를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세아가 물 자체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수중치료는 비용 부담이 컸다. 오랜 기간 치료를 이어오면서 가정의 경제적 부담도 함께 커졌고, 결국 현재는 수중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좋아하는 치료였고 세아의 신체 활동에도 도움이 됐던 만큼 가족에게는 아쉬움이 크다.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은 아이
세아의 세상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학교다. 가족은 세아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에 입학한 세아는 가족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학교생활을 좋아한다. 담임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고, 친구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 할 정도다. 어머니가 “오늘 학교 좋았어?”라고 물으면 아직 표현은 서툴지만 세아는 “좋아”라고 대답한다.
어머니가 세아에게 바라는 하루 역시 사실 그 정도다.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보다 오늘 하루가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인지치료를 받는 세아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가족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기저귀를 떼는 일이다. 여섯 살 무렵부터 학교와 가정에서 함께 배변 연습을 이어왔다. 수업이 끝난 뒤 화장실에 가보고, 집에 돌아와 다시 앉아본다. 잠들기 전과 아침에도 같은 일과를 반복한다. 하루 세 번 성공하던 것이 어느 날은 네 번, 다섯 번이 되고, 학교에서도 “오늘은 두 번 했습니다.”, “세 번 했습니다.”라는 연락이 온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가족에게는 세아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호를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언제 이렇게 컸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치료와 함께 멈췄던 어머니의 시간
세아의 치료가 이어지는 동안 가족의 일상도 크게 달라졌다. 어머니는 세아를 돌보기 위해 오랫동안 일을 내려놓았다. 치료센터를 오가고, 이동을 돕고, 집에서도 돌봄을 이어가면서 직장생활까지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세 살 무렵부터 일주일 대부분이 치료 일정으로 채워지면서 가족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세아의 치료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약 8년 동안 어머니의 시간도 함께 멈춰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아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어머니에게도 몇 시간의 시간이 생겼고, 오래전 내려놓았던 일을 아르바이트로 다시 시작했다.
(세아 어머니)
“일 끝나고 커피 한 잔 들고 집에 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8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게요.”

오랜 돌봄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져 예전처럼 몸이 따라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는 자신이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다. 세아가 학교에서 자신의 하루를 만들어가는 동안 어머니에게도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다시 만들어갈 여지가 생긴 것이다.
세아의 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세아가 오랜 시간 치료를 이어오면서 가족이 가장 크게 체감한 현실적인 어려움은 치료비였다. 중복장애가 있는 세아에게 치료는 단기간에 끝나는 과정이 아니었다. 인지와 언어, 신체 기능 등 여러 영역에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고, 병원과 치료센터를 오가는 생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모든 치료비를 보험이나 공적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가족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계속 쌓였다. 외벌이로 생활하며 수년간 여러 치료를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보험 혜택이 줄어든 이후에는 치료 횟수도 이전보다 줄여야 했다.
어머니가 세아의 치료와 돌봄을 위해 경제활동을 오랫동안 중단한 것도 가계에는 큰 부담이었다. 특히 부모 모두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아빠의 건강까지 좋지 않았던 시기는 가족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아에게 필요한 치료를 모두 놓을 수는 없었다. 그 무렵 다행히 한국장애인재단을 통해 세아의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세아 어머니)
“다른 분들에게는 한 달 월급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에게는 정말 간절했어요. 그때는 생활 자체가 잘 안되는 시기였거든요.”
어머니는 당시의 지원을 ‘단비’라고 표현했다. 한 번의 지원으로 세아의 긴 치료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더 줄이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족에게는 큰 힘이 됐다.
가족의 일상을 지키는 지원
오랜 시간 장애아동을 키워온 어머니는 이제 치료비만큼이나 돌봄과 이동 지원의 중요성도 크게 느낀다. 현재도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실제 가족에게 필요한 시간만큼 충분히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치료가 끝난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학교 수업 이후 일정 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다면 부모가 일을 이어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세아가 학교를 좋아하는 만큼 어머니는 앞으로 방과후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싶다. 아이에게는 학교와 또래 관계를 경험할 시간을 주고, 부모에게는 일을 이어가고 자신의 일상을 유지할 시간을 주는 것. 어머니가 바라는 지원은 결국 한 아이의 치료에만 머물지 않는다. 장애아동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 전체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인터뷰의 마지막, 세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눈물을 보였다.
(세아 어머니)
“세아가 지금까지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요.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게 정말 고맙고요.”
그리고 마치 세아에게 직접 이야기하듯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세아 어머니)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엄마가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으니까 너의 속도로 성장했으면 좋겠어.”

어머니가 바라는 세아의 미래는 복잡하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래 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지금 가족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창하지 않다. 세아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주고, 좋아하는 사람과 장소를 조금씩 더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혼자 앉아 있는 일도, 사물을 이해하는 일도, 자신의 두 발로 걷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치료와 기다림 속에서 세아는 그림 속 익숙한 사물을 알아보고, 자신의 좋고 싫음을 표현하고, 학교에서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며 세상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세아의 성장은 빠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도 세아는 자신의 속도로, 세상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기획 : 박로사, 안소정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