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회
“조금 달라도 뭐 어때요?”👭💕
유튜버 ‘아보피치’ 자매가 전하는 소소하고 반짝이는 일상🥑🍑🎥

자극적인 썸네일로 가득한 유튜브 영상들 사이에서 조용히 시선을 붙잡는 채널이 있다. 아보카도와 복숭아처럼 싱그러운 에너지를 품은 자매 ‘아보피치’. 이 채널에는 대단한 기적이나 거창한 성공 서사가 없다. 대신, 지적장애 동생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언니의 하루가 있을 뿐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든든한 파트너로 서로의 일상을 채워가는 오정현, 오지현 현실 자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따로 또 같이, 자신만의 속도로 쌓아가는 일상
언니는 세상의 편견을 허무는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동생은 성악가, 플루트 연주자, 모델, 배우를 넘나드는 N잡러 아티스트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특히, 장르 불문 여러 무대를 누비는 동생에게 요즘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
(동생 오지현)
“연기하는 게 제일 재밌어요. 데뷔작으로 <프레드(MEET FRED)>라는 연극을 했는데, 연습할 때는 힘들었지만 정말 즐거웠거든요.”
(언니 오정현)
“지현이가 맡은 역할이 대사가 정말 많고 감정선도 복잡했어요. 특히 대사 외우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외우더라고요. 그렇게 3~4개월을 오로지 연습에만 매진하는 걸 보면서 참 많이 놀랐죠. 연극이 2주 동안 매일 공연됐거든요. 다행히 큰 실수 없이 무사히 마쳤어요. 지현이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정말 뿌듯했어요.”

지금은 서로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가 된 두 사람이지만, 이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남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풍경을 품고 있었다. 누구보다 가까운 언니의 시선에 동생이 조금 다르다는 게 느껴졌던 건 언제였을까.
(언니 오정현)
“정확히 느낀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어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 보면 다들 게임이나 춤을 어려움 없이 잘하는데, 지현이는 항상 뭔가 좀 서툴렀거든요. 설명을 똑같이 해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지현이는 모임에서 항상 깍두기였어요. 우리끼리 ‘지현이는 깍두기야’ 정해놓고 놀기도 했죠. 어느 날은 지현이가 ‘언니, 왜 내가 깍두기야?’ 물어본 적도 있었어요.”
세 살 터울인 동생의 순수한 질문에 당시 열 살 남짓이었던 언니는 선뜻 대답하기에 어려웠다고 한다. 동생이 가진 ‘다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니 오정현)
“그때는 저도 지현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잘 몰랐어요. 부모님께서도 그저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느린 편이라고 설명해 주셨거든요. 장애라고는 생각을 못 해봤어서 저 역시 동생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못했어요. ‘그냥 그런 거야, 너는 그렇게 알아들어’ 무심하게 넘기기도 했죠.”

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장애 등록을 했을 만큼, 부모님은 딸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오랜 시간 치료에 매진했다. 자칫 첫째인 언니가 소외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부모님은 두 딸을 향한 관심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언니 오정현)
“부모님께서 제가 비장애 형제로서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지현이가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부모님은 제 학교생활에 똑같이 관심을 가져주셨거든요. 덕분에 동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자랄 수 있었죠.”
서로를 지탱하는 위로와 사랑의 힘
항상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동생이지만, 언니는 힘든 순간에 오히려 동생에게 기대어 큰 위로를 얻었다.

(언니 오정현)
“스무 살 무렵 연애가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밤마다 울었어요. 지현이랑 2층 침대를 같이 썼는데, 제가 위층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으니 지현이가 묻더라고요. 왜 우냐면서 ‘언니 그런 사람은 빨리 잊어버려, 언니는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라고 거침없이 위로를 해줬어요. 그게 벌써 7년 전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동생 오지현)
“언니가 위층에서 엎드려 울고 있는데 밑에 있는 저한테까지 울음소리가 다 들리는 거예요. 언니가 너무 서럽게 우니까 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울지 말라고,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해 줬어요.”
(언니 오정현)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항상 지현이에게 도움을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 역시 지현이에게 정말 많은 위로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걸요.”

감정 표현에 서툰 언니와 달리, 동생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언니는 그런 동생을 ‘인간 리트리버’라 부르며, 동생만의 맑은 에너지를 닮고 싶어 한다.
(동생 오지현)
“저는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잘해요. 가끔은 안 미안해도 사과하고, 매일매일 고맙다고 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요. 저는 사람이 정말 좋아요.”
(언니 오정현)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격식 없이 잘하는 건 확실히 제가 지현이한테 배워야 할 점이에요. 지현이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밝아서 주변에서도 ‘인간 리트리버’ 같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유튜브가 바꿔놓은 자매의 풍경
싱그러운 이름만큼이나 통통 튀는 유튜브 채널 ‘아보피치’는 언니 오정현이 좋아하는 아보카도와 복숭아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처음에는 언니 혼자 운영하던 소박한 채널이었지만, 동생이 합류하면서 채널의 색깔은 180도 달라졌다.

(언니 오정현)
“동생의 메이크업 영상에 대한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그때 깨달았죠. 지현이 주변에 화장 한 번 못 해보고, 여행 한 번 가 본 적 없는 발달장애 친구들이 정말 많다는걸요. 그 친구들의 세상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는 추천을 받으면서 지현이와 본격적으로 함께하게 됐어요.”
하지만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장애가 있는 자녀가 혹여나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까 노심초사한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오정현)
“부모님은 지현이의 장애가 알려졌을 때 돌아올 영향들을 많이 걱정하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가장 든든한 팬이세요. 오히려 저희가 부모님의 인식까지 바꿔놓았다고 말씀해 주실 때 정말 뿌듯하죠.”

동생은 유튜브를 통해 몰라보게 성장했다. 어린 시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겨우 말을 틔웠던 아이가, 이제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생 오지현)
“어릴 땐 말도 느리고 책도 못 읽었어요. 그런데 유튜브를 하면서 언니랑 계속 대화하고 카메라를 보다 보니까 이제는 인터뷰도 잘해요. 많이 똑똑해진 것 같아요.”
‘몽글상담소’ 그 후, 지현 씨의 심장을 뛰게 한 풋풋한 로맨스
최근 발달장애 청춘 남녀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 SBS 스페셜 <내 마음이 몽글몽글 – 몽글상담소>에 출연해 최종 커플이 되었던 오지현. 방송이 끝난 후에도 두 사람의 인연은 현재진행형이다.

(동생 오지현)
“카톡도 매일 하고 데이트도 벌써 두 번이나 했어요. 합정 쪽에서 만나서 영화도 봤어요. 영화 보고 맛있는 것도 배 터지게 먹고 수다 떨면서 돌아다녔는데, 같이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아요.”
(언니 오정현)
“첫 데이트 때는 제가 같이 나갔지만, 두 번째는 정말 둘이서만 만났거든요. 지현이 인생에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죠. 단둘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아 대견해요.”
아직은 썸 단계지만, 연애의 감정은 동생을 눈에 띄게 변화시켰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경청과 사랑스러움이다.
(동생 오지현)
“연애를 하니까 상대방 말을 더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주변에서 얼굴이 훨씬 예뻐지고 밝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기분 좋아요.”
(언니 오정현)
“지현이가 준혁 님 보고 싶다고 수줍어하며 저한테 얘기할 때면 ‘얘가 사랑에 빠지면 이런 모습이구나’ 싶어 정말 신기해요. 최근에 아버지의 은퇴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원래 지현이는 셀카를 절대 안 찍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혼자 호텔에서 셀카를 찍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 ‘준혁이한테 보내줘야 한다’는 거예요. 정말 귀여운 모습이었죠.”
이끌어가는 손을 놓고, 서로의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자매지만, 최근 들어 서로에게 느끼는 감동은 더욱 깊어졌다. 언니 오정현은 빡빡한 강의 스케줄 속에서도 “언니, 오늘도 투덜거리지 말고 재밌게 해보자!”라며 먼저 파이팅을 외쳐주는 동생의 소소한 응원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동생 오지현 역시 언니의 변화에 큰 감동을 받고 있다.

(동생 오지현)
“예전에는 언니가 일방적으로 날짜를 정해서 알려줬는데, 올해부터는 일정이 잡히면 저한테 미리 물어봐 줘요. ‘이때 이거 해도 괜찮겠어?’라고 제 의사를 물어봐 주는데 그게 정말 최고예요. 언니가 제 페이스를 맞춰주는 게 느껴져서 너무 고마워요.”
(언니 오정현)
“지현이가 그렇게까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고 통보하듯 밀어붙였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지현이도 쉬고 싶은 시간이 있을 거란 걸 알아요. 지현이의 한계를 제가 먼저 정해버렸던 과거의 편견을 반성하며, 이제는 수평적인 파트너로서 함께 나아가고 있어요.”
“조금 다르면 뭐 어때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두 사람은 우리 사회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색깔을 존중해달라는 진심 어린 당부다.

(동생 오지현)
“막 큰 소리내면서 윽박지르거나 ‘집에 가 있어!’라고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편견 없이 서로를 바라봐 주세요.”
(언니 오정현)
“저희가 요즘 밀고 있는 문장이 있어요. 바로 ‘뭐 어때’예요. 지현이가 밖에서 음식을 좀 흘리면 어때요, 닦으면 되죠. 실수를 좀 하면 어때요, 다시 고치면 되죠. 남들 눈치 보느라 지현이에게 ‘조용히 해라, 가만히 있어라’ 말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당당하게 말해요. ‘우리 조금 달라도 뭐 어때요?’ 그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의 소소한 일상에 자꾸만 시선이 갔던 이유가 뭐였는지 알 것 같았다. 특별히 포장하거나 가공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덤덤히 보여주는 힘. 그 밑바탕에는 “뭐 어때?”라는 자매만의 주문이 숨어 있었다. 남들의 시선이 유독 신경 쓰이고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는 날, 한번 외쳐보면 어떨까. “좀 서툴면 뭐 어때, 이게 나인데!” 이 짧은 주문 덕분에 당신의 오늘이 어제보다 훨씬 더 빛날지도 모른다.
기획 : 박로사, 김민영
사진 : 홍경택